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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천개의 찬란한 태양(할레드 호세아니)

2021.10.11. 완독


천 개의 찬란한 태양


 

나는 항상 일상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책읽기는 너무 어려워서, 읽다 포기한 책이 수두룩(빽빽)하다.

강제성을 가져보고자 독서모임에 들어가게 되었다.

 

첫 번째로 선정된 도서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

500페이지가 넘고, 잘모르는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재미없어 보이는 표지에 약간 겁을 먹었지만, 처음부터 포기할 수 없기에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재미있다기 보다 흡입력이 있었다. 의외였다. 

드라마에 나오는 현란한 배경이나, 잘생기고 예쁘게 묘사되는 주인공, 설레는 로맨스는 없었다.

오히려 읽기만해도 불쾌한 배경 설정, 쩍쩍 갈라진 피부와 푸석한 눈빛 섬찟한 장면 묘사들, 살아나가야 하기 때문에 하는 선택들이 가득한 책이었다. 오랜만에 빠져들어 읽은 책이었다.

 

 

 

 

 

<간단 줄거리>

사생아 출신의 마리암은 어머니와 살고 있고 가끔씩 찾아오는 아버지 잘린을 매우 사랑한다.

마리암이 10대 소녀가 됐을 즈음 아버지 잘린의 집에 찾아가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어 하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고,

돌아간 집에서는 어머니는 자살한 모습만이 마리암을 반겼다.

아버지 잘린의 본처들은 마리암을 먼 동네 라시드라는 40대 아저씨에게 강제 시집을 보냈고, 잘린도 그 뜻에 따랐다.

마리암은 잘 따르던 파이줄라 선생님에게 인사도 못하고 팔리듯 시집가버렸다.

라시드는 처음엔 마리암에게 잘해주는 듯 하지만 거듭되는 마리암의 유산을 보며 서서히.. 는 아니고 빠르게

악마 같은 모습을 드러냈으며, 마리암을 하녀 취급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라일라는 마리암 보다는 15살 정돈 어린 예쁜 소녀이다. 교육에 힘쓰는 아버지 아래에서 크다 보니 서구적 교육을 받고, 당당하고 똑똑했다. 그리고 티라크와 서로 좋아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내전으로 가족들과 티라크가 몰살되고 혼자 남은 라일라를 라지자가 데려와 부인으로 삼았다. 10대 중반쯤의 소녀를 60대 아저씨가.

그리고 라일라는 아지자를 낳았다. 하지만 아지자는 라일라와 티라크 사이의 아이였다. 여자아이를 낳았고 서서히 그 아이가 자기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 라지자는 라일라에게도 마리암과 똑같은 폭력을 휘둘렀다. 

그들 사이에서도 잘마이 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다행히(?) 남자였고, 라지자는 잘마이 빼고 3명에게는 가혹했다.

 

마리암과 라일라는 처음에는 좋지 않았지만 그 과정속에서 전우가 되었고 친구가 되었고 나중에는 모녀가 되었다. 

두 여인을 향한 너무나 섬뜩하고 끔찍한 폭력 속에서 마리암은 라일라를 구하기 위해, 라지자를 죽였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법에 따라 남편을 죽인자는 총살이라는 형을 받고 죽었다. 아버지 잘린을, 파이줄라 선생님을 만나지 못하고 죽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나 그녀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녀는 친구이자 벗이자 보호자로서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가 되어, 드디어 중요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마리암은 이렇게 죽는 것이 그리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 나쁜 건 아니었다. 이건 적법하지 않게 시작된 삶에 대한 적법한 결말이었다.'(p.505)


라고 말했다. 죽기전 그녀는 라일라를 보고 싶어 하였고, 또 평화롭다고 느꼈다.

라일라는 죽은줄로만 알았던 티라크를 만나 아지자와 잘마이를 데리고 카불에서 도망쳐 산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카불에 돌아오고 마리암의 마지막 흔적들을 정리한다. 

   

  

 

 

 

 

<느낀점>

우선 나는 책을 읽으며 너무 생생한 묘사들에 읽기가 힘들었다. 잔인한 것을 잘 못 보고, 듣고, 피를 무서워하는 성향 탓에 묘사되는 내전, 탈레반, 그리고 집안에서의 라지자의 폭력 장면을 읽을 때마다 손에 힘이 쭉쭉 풀리고 저혈압이 오는 기분을 느꼈다. 그럴 때면 물 한잔 마시거나 침대에 누웠다가 일어나면서 다시 읽기 시작했다.

 

피뿐만 아니라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법과 상황들, 여자 혼자서는 길에 다닐 수 없어 자식을 보러 갈 수 없고, 병원에서는 여성을 치료할 수 없어 아이가 나오는 산모가 죽을 상황이며, 수틀리면 여자를 마구 패도 되는 현실.

너무 고통스러운 현실은 외면하는 성향이 강해서 아픈 영화와 책은 잘 보지 않았다. 하지만 상처도 죄도 용서도 마주해야 더 나아지는 법이듯, 이러한 고통스러운 현실도 마주하고 알아야 함을 느껴간다. 

 

과거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여자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고등 교육을 받고, 정부부처에서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내전, 탈레반 장악 등으로 여성의 인권은 바닥을 쳤고, 인권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조금 나아지는가 싶게 소설은 끝이 났지만, 요즘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또 탈레반이 장악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잘 몰랐다. 이슬람에 대해서도 모른다. 탈레반도 잘 모른다.

부끄럽지만 읽어도 잘 안 들어오고... 이건 핑계이고 관심이 없다 보니 더 찾아보지 않아 그런 것 같다. 잘 몰랐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미국, 아프가니스탄 정부, 탈레반이 아닌 아프가니스탄의 국민들에 조금 더 관심이 생겼다.

사실 나는 이슬람 종교를 가진 전체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슬람 종교를 가진 사람이 탈레반이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럴 것이라 예상이 된다. 한국에 나와있는 그들도 이러한 불편한 시각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계속되는 해명에 지쳐 순응하고 지내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자들이 자신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 여기고 꺼려하는 것을 느꼈을 때의 기분은 어떨까.

 

그리고 또 그 나라 여자들이 많이 걱정되었다.

또다시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핍박받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지.

이 책은 소설이지만 현실임에 분명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프다.

 

 

나에게 이런 책을 첫 번째로 읽으라고 선정해준 인스타 속 독서모임에게 감사를 드린다.